마음 창고 속 쥐를 잡는 법

Posted by 희씨
2017.10.09 17:07 EDITORIAL/문예 ::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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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는 ___한 사람이다" 혹은 “이 사람은 ___하다” 라고 말할 때는, “이 사람은 항상 이래왔던 사람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 같은 사람이야.”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렇듯, 한 사람을 어떠한 사람이라고 묘사하는 것은 그 사람의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성품과, 그에 대한 나의 확신을 요구하기 때문에, 나에겐 항상 서툴고 어려운 일로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성격을 논할 때 예외 두기를 좋아한다. “나 진짜 평소에는 화 안 내는데, 그건 진짜 갑자기 그러니까 너무 화가 나.” 라던지, “내가 진짜 평소에는 다 도와주는데, 지금은 내가 너무 바빠서.”라며 나 자신에게 관대해지기 십상이다.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이 있었고,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평소의 나처럼 따뜻할 수 있었겠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반면,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S. 루이스는 갑작스럽게, 예고 없이 닥쳐온 상황에서 그 사람이 하는 행동들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예시라고 말한다. 그 사람이 “따뜻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걸칠 시간이 차마 없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 계산하고, 그에 따라 자신을 정돈하기 전에 나오는 자동적인 반응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C.S. 루이스는 예시로 창고에 숨어 있는 쥐를 든다. 창고의 문을 갑자기 열면 평소보다 쥐들을 발견하기 쉽지만, 이는 갑작스러움이 쥐들이 도망가서 숨는 것을 방지하기 때문이지, 그 갑작스러움 자체가 없던 쥐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같은 맥락으로, 상황의 갑작스러움이 우리를 차갑고 퉁명스러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정돈할 시간이 없었던 우리가 얼마나 퉁명스러운 사람인지를 보여준다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어두운 자신은 항상 쥐처럼 우리 안에 존재하지만, 우린 그들에게 도망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그들을 구석에 숨기고 난 후에 마음 창고의 불을 켜고, 그제야 깨끗해진 마음의 창고를 바라보며 “나는 따뜻한 사람이야"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마음의 창고를 언제 들여다보던 쥐가 한 마리도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대신 “따뜻한 사람”이 아닌 “일부만 따뜻한 사람” 혹은 “여유로울 때는 따뜻하지만 바쁠 때는 예민한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지만, 그들이 쥐를 얼마나 재빠르고 능숙하게 숨기느냐에 따라 그들은 따뜻한 사람으로 불린다. 어느 순간, 남들에게 따뜻해지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 쥐가 굶어 죽어,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졌을 때, 그 사람은 진정으로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이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의 행동이 아닌 반복된 습관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하나의 선행을 할 때마다 그 사람은 “선행을 더 자주하는" 사람이 되고, 그 “선행을 더 자주 하는" 사람이 또다시 선행을 아주 오랫동안 반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따뜻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한 사람의 무수한 조그만 행동들이 모여 그가 따뜻한 사람이 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더 나아가 남들이 자신이 이런 따뜻한 사람임을 알아채고, 그들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정의되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따뜻함을 느끼고, 그 따뜻함에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흔적이 녹아 있는 것을 볼 때, 나는 그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이러한 흔치 않은 따뜻함을 나는 할머니에게서 찾을 수 있다. 가족과 친구들로 부족해 “전에 가던 미용실 아줌마”를 위해 새벽기도를 올리시는 할머니의 모습이나, 치매 걸린 이웃집 할머니의 되풀이 되는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쳐주는 그녀의 웃음이나, 옆에 앉은 아이가 추울까 봐 불편한 손으로 담요를 덮어주는 그녀의 손길에서는 온전한 따뜻함이 느껴진다.


왜냐하면, 할머니가 새벽 여섯시에 자동으로 눈을 뜨고 일어나는 습관 뒤에는 셀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했던 수십 년 동안의 기도가 숨겨져 있고, 그녀의 주름진 눈웃음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웃어주었던 흔적이 있고, 그녀의 담요를 덮어주는 손길 속에는 평생 자신보다 남을 앞세워 살아온 삶의 자세가 서려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런 습관들 속에는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했던,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선행이 녹아 있다. 그 모든 조그만 84년의 흔적들이 한 사람의 따뜻함으로써 남아있는 것에서 나는 그녀의 마음의 창고가 쥐 한 마리 없이 깨끗함을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나는 내 마음의 쥐들을 급급하게 숨기며 살아간다.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월그린 직원에 웃으며 “Have a good day”라고 하며 웃어 보이고, 아침을 거르고 온 친구에게 내 그레놀라바를 반 잘라 준다던가, 길을 가다 부딪힌 사람에게 “It’s okay”라며 웃어주는 것조차도 내겐 “따뜻해지고 싶다는 의무감"을 걸칠 몇 초의 의식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나 자신이 이 모든 것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느끼고, 되레 따뜻하지 않은 내가 낯설어질 먼 언젠가는, 누군가는 나를 “이 사람은 따뜻한 사람이야"라고 망설임 없이 정의하고, 그 따뜻함 속에 나의 삶이 녹아있었으면 좋겠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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